복잡한 가정 환경과 어린 시절의 상처
박영산 대표의 삶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전 결혼에서 세 딸을 두었고,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한편 박 대표의 아버지는 이미 다른 가정이 있었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산 대표가 태어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아버지의 본처도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는 강릉 위에 주문진이에요. 주문진 동네에서 엄마가 닭하고 술병을 들고 저를 버스에 태워줬어요. 그러면 그 주문진에 있는 등대 밑에 내려서 등대 근처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가요. 할머니 집에 가서 어... 반갑게 맞아 줘요. 어... 작은 아버지라는 분도 계시고 뭐 이승도 계시고 뭐 승모님도 계시고 할머니도 계시고 사촌들 있고... 그 제사상이 차려진 곳에 절을 해요. 제가 절을 하는데 저랑 담없는 분들인 거예요."
이러한 복잡한 가족 관계는 어린 박영산에게 큰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이 '박'씨인 반면, 누나들은 '김'씨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욱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그에게 깊은 상처와 외로움을 남겼습니다.
**"난 내가 어른이 되면 아버지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며 성장한 박영산은 어린 나이에 가장의 역할을 맡아야 했던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가정사는 그의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후에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은행원으로서의 성공과 내면의 공허함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박영산은 열심히 공부하여 은행에 입사하게 됩니다. 입사 과정에서 그는 "내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문구를 가훈으로 적었는데, 이는 당시에는 단순히 멋있어 보이는 문구에 불과했지만, 후에 그의 삶에 깊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은행에 입사한 후 박영산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합니다. 특히 그가 개발한 '마이카 대출' 상품은 큰 성공을 거두어 그의 입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신한에서 2금융권에서 취급하던 자동차 대출이었잖아요. 그때 고금리로 했던 대출을 이제 마이카 대출이라고 해서 1금융권에서 최초로 그 대출 상품이 나왔고, 그리고 또 어려운 분들은 중고차를 사면서 대출을 받을 수 없었는데 그 부분을 이제 중고차 대출까지 만들어 놓고..."
이 상품의 성공으로 박영산은 은행 내에서 높은 신임을 얻게 되었고, 빠르게 승진하며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결혼과 신앙과의 첫 만남
박영산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 출신의 여성과 결혼합니다. 그의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박영산 자신은 종교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면서 어떤 신앙에도 의지하지 않고 정말 우리가 열심히 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라는 약간 자신감과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나 결혼 생활이 진행되면서 아내가 몰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는 부부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특히 박영산이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 옆에 있던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그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신앙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
아내의 교회 출석 사실을 알게 된 박영산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그는 직접 교회를 찾아가 목사님께 욕설을 퍼붓고 교회를 비난합니다.
"당신이 이교의 목사야! 여기서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어... 남의 순진한 아내를 꼬드겨서 교회 미치게 만들어서 남의 가정 파탄 내는 게 당신들이 원하는 거야?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죽여버려!"
이 사건 이후 박영산은 집을 나가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고, 가정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는 아내의 신앙생활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아버지 학교를 통한 변화의 시작
박영산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아버지 학교'를 통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참석했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됩니다.
"아버지 당신같이 살지 않을 거야라고 이를 악물면서 정말 꾸역꾸역 덮어 놨던 아버지를 되돌아보면서 생각해보니까 이제... 아, 그때 당시 직업도 없었고 또 외도하다가 또 아이는 생겼는데 또 본처의 아이도 생겼고 두 집 살림 해야 되고... 이게 또 이렇게 돈벌이도 안 되고 하니까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겠어요."
이 과정에서 박영산은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됩니다. 이는 그의 내면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신앙에 대한 그의 태도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업 시작과 초기의 어려움
은행에서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장칼국수 사업을 시작한 박영산은 초기에 매우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두 테이블 손님만 오는 날도 많았고, 매출은 형편없었습니다.
"하루에 한 테이블 두 테이블 오시는 거예요. 아... 그때 당시는 장칼국수를 모르니까 빨갛고 맵고 이런 거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모르기도 하고 하니까. 또 아이와 또 어르신들이 있는 가정들은 안 오니까... 매우 힘든 상황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박영산은 점점 더 절망감에 빠져갔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홍보 활동을 하고, 밤늦게까지 일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신앙을 통한 마음의 변화
그러던 중 박영산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로 결심했고, 이는 그의 태도와 행동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랑하자. 내가 하는 모든 이것들을 지금 사랑하자. 그냥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그때서부터 갑자기 모든 게 바뀐 거예요."
이러한 마음가짐의 변화와 함께, 그는 아내와 함께 매일 아침 큐티(QT)를 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매출 100만 원 될지어다. 그대로 되리라.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선포기도를 매일 했습니다.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매출이 100만원을 넘기게 되었고, 이는 박영산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업의 성장
박영산의 사업은 점차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1호3 패밀리' 기업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에 시작했던 그 밀키트가 지금 미국에 H 마트 70개, 제일 큰 마트에서 발주가 들어왔어요. 요번에 마트 캐나다 쪽에서 토론토고 밴쿠버 쪽에서 들어와서 지금 준비 중에 있고... 그리고 이제 그다음에 뉴욕에서 이제 한 그 식자재를 통하시는 분이랑 거기 식당하시는 분들한테 이제 제공할 샘플들, 네네 그것도 이야기하고 있고 일본도 그렇고..."
박영산은 자신의 기업을 "하나님이 이끄시는 기업"이라고 소개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는 사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어려움을 겪는 다른 사업자들을 돕는 것을 새로운 사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삶의 완전한 변화와 새로운 비전
이제 박영산은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며,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어 매일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한테 세상에 아버지가 없었어요. 요즘은 하나님이란 말보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거예요. 부르짖을 수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박영산은 이제 자신의 사업을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사업자들을 돕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의 vision은 단순히 사업의 성공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제 생각과 제 계획으로는 답이 없습니다. 가장 힘든 건요, 그들이 시작하는 그 자금과 그런 노력들이 지금 어떻게 이제 좀 어려운 상황으로 내려가요. 그래서 제가 이제 책도 그렇고 제가 좀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어... 이런 장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을 그냥 마음으로 하고 그냥 위로만이 아니라 발로 뛰면서 좀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을 통한 가족 관계의 회복
박영산의 신앙 생활은 그의 가족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아내와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었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는 이제 가정에서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 막내 딸이 아직 다섯 살이라서 매일 딸과 색칠 공부를 하거든요. 색칠 공부 책을 보면 이렇게 검정색으로 테두리가 그려져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거기다가 뭐 겨울왕국이든 캐치티니핑이든 그 안에 색을 칠하잖아요. 그니까 결국은 부모가, 아버지가 우리가 자식들에게 테두리 그림을 주게 되더라고요."
이 비유를 통해 박영산은 자신이 아버지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자녀들에게 올바른 '테두리'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기업가로
박영산은 자신의 성공을 단순히 개인의 성취로 여기지 않고,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외식업, 식당하시는 분들이 지금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옆집 가게가 우리 경쟁 상대가 아니에요. 이미 대기업의 제품들이 대형마트에서 오픈런이 이루어지고 있고, 매장들은 다들 내보내고 사장님들이 직접 모든 시간을 감내할 정도로 되는데... 이런 매장들을 저희는 사실 지금 관리를 해주고 또 방법을 찾아주고 해야 돼요."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비즈니스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비즈니스와 선교의 결합
박영산의 비즈니스는 이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이러한 확장은 단순한 사업의 성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희 방송도 미국 미주 지역이랑 캐나다에서 엄청 보이거든요. 마트에 제품이 들어가고... 어... 정말 제품으로 들어갔지만 그쪽 현지인들이,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시간도 사실 저희는 선포하고 있거든요."
그는 해외 진출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제품에 성경 구절을 넣거나, 기독교적 가치를 반영한 마케팅 전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성장과 도전
박영산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사업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요. 네네... 어... 근데 준비를 하고 하나님이 정말 열어 주시면 그때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사실 다른 지역, 지방 아래 지역들은 사실 매장 전포를 좀 안 열고 여기에서 계속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때가 되시면 이제 저희도 이제 전반적으로 전국적으로 좀 움직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 상처에서 은혜로
박영산 대표의 삶은 복잡하고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시작되었지만, 신앙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찾게 된 놀라운 여정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어떤 상처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개인의 성공 스토리를 넘어, 신앙을 통한 진정한 변화와 성장, 그리고 그 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헌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박영산 대표의 여정은 우리에게 진정한 변화와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가 개인을 넘어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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