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추리소설의 여왕이 돌아왔다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Nele Neuhaus)의 신작 『몬스터』가 드디어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유럽에서 20년 가까이 사랑받아온 '타우누스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사적 제재(私的制裁)라는 현대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다루며 독자들에게 정의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던집니다.
타우누스 시리즈의 매력
타우누스 시리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실제 지명인 타우누스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수사물입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 수사반장과 피아 산더 형사는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로, 이들의 뛰어난 추리력과 인간적인 면모가 조화를 이루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시리즈 중 네 번째 작품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최근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을 정도로, 이미 그 재미와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출간된 『몬스터』는 기존 팬들은 물론 새로운 독자들에게도 큰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의 시작
『몬스터』는 12월의 어느 날, 16세 소녀 라리사(리시)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눈 덮인 교회 근처에서 발견된 리시의 목 졸린 시신은 타우누스 지역 전체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의심받는 난민
수사 과정에서 리시의 몸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 파바드 마흐무디의 유전자 흔적이 발견됩니다. 파바드는 과거 성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변호인의 항소로 1년 넘게 미결 구금되었다가 사건 발생 3일 전에 석방된 인물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난민 통합 정책과 법체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사회 전반에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되고,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퍼져나가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
상실의 고통 속 어머니, 안네
리시의 어머니 안네는 극심한 상실감과 혼란에 빠집니다.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얻은 유일한 딸을 잃은 그녀는 자신이 딸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 너무나 적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주변의 위로도, 남편 외르크와의 관계도 모두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경찰이 찾아와 죽은 딸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지만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딸과 무척 가까운 엄마였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딸에 대해 아는 것이 이렇게나 없었던 건가?"
친구의 비밀을 간직한 사라
리시의 가장 친한 친구 사라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고뇌에 빠집니다. 그녀는 리시가 그날 누군가를 은밀히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사라는 그날 리시가 누구를 은밀히 만나기로 했는지 안다. 그래도 자신의 의심을 경찰에게 말할 순 없다. 어쩌면 상상하고 과장하기 좋아하는 리시가 그냥 지어낸 얘기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만일 사실이라면? 아무리 죽었다고 해도, 친구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할 순 없지 않나……."
압박 속 수사팀, 보덴슈타인과 피아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과 피아 산더가 이끄는 강력11반은 언론과 상부의 압박 속에서 수사를 진행합니다. 57세인 보덴슈타인의 자리를 노리는 젊은 인사들의 존재는 그에게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한편 피아는 치매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 돌봄과 경찰 업무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사건의 새로운 국면
미스터리한 죽음들의 연결고리
수사가 난항을 겪던 중, 숲에서 맨발로 뛰쳐나온 한 남자가 자동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남자는 과거 불법 자동차 경주 중 임신한 여성을 치어 죽인 르네 지겔로 밝혀집니다.
흥미롭게도, 지겔이 과거에 사고를 낸 임신부의 남편이 지겔의 사인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이 수사팀의 주목을 받습니다. 이를 계기로 과거의 미제 사건들과 현재 사건 사이의 연관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적 제재 단체의 등장
리시의 어머니 안네에게 한 여성이 접근해 충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그 여성은 파바드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안네가 원한다면 딸의 살인자를 직접 처단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복수를 넘어선 '정의 실현'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됩니다.
"내 딸의 살인범을 내 손으로 죽이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정의라고요."
법과 정의의 딜레마
『몬스터』는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현대 사회의 정의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소설 속 프랑크푸르트 지방 법원의 하벨카 판사는 법정이 정의를 실현하는 장소가 아닌, 단순히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임'으로 변질된 현실에 환멸을 느낍니다.
"하벨카 판사는 어린 나이에 전과 기록이 많고 단정치 못한 자세로 히죽거리는 피고들, 명백한 죄임에도 공판을 무효로 만들 뭔가를 찾아내 이의 신청하는 변호인들을 보며 몇 달간 미뤄왔던 결정을 드디어 내린다. 그러고는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야말로 정의를 위한 것이기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하는 '사적 제재'라는 개념은 독자들에게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깁니다. 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나서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의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현대 사회의 민감한 이슈들을 담아내다
『몬스터』는 단순한 살인 사건 추리를 넘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 난민 문제: 용의자로 지목된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유럽 사회가 직면한 난민 통합 문제를 반영합니다.
-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사건 정보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여론이 형성되고, 이는 수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 법체계의 한계: 명백한 범죄자들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처벌을 피해가는 현실은 현대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 개인의 윤리적 딜레마: 친구의 비밀을 지켜야 할지, 진실을 밝혀야 할지 고민하는 사라의 모습은 현대인들이 자주 마주하는 윤리적 갈등을 보여줍니다.
- 일과 가정의 양립: 치매 어머니를 돌보면서 동시에 중요한 수사를 이끌어가야 하는 피아의 상황은 현대인의 일-가정 양립 문제를 대변합니다.
결론: 우리 안의 '몬스터'를 돌아보다
『몬스터』라는 제목은 단순히 범죄자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개개인 안에 잠재된 '몬스터'의 존재를 환기시킵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적 제재, 편견에 사로잡힌 대중의 분노,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이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안의 '몬스터'가 될 수 있음을 작가는 강조합니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법과 도덕, 개인의 감정과 사회의 질서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고민의 과정을 치열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몬스터』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날카로운 사회 비평, 그리고 깊이 있는 인간 심리 묘사가 어우러진 수작입니다. 추리소설 팬은 물론, 현대 사회의 문제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정의와 법, 그리고 인간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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